사실 대학원생인 나에게는 독서조차도 왠지 죄스럽고 불안하다. 책 읽을 시간에 논문을 하나 더 읽거나, 취업 정보를 수집해야만 할 것 같은 압박 때문이다. 그래서 책을 사고도 방치해놓기 일쑤였는데, 시간이 흐르니 점점 책에 굶주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책을 읽고 싶다는 생각은 '바람'이라기보다 '욕구'라고 표현하는 게 더 어울렸고, 나는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분명 욕구 불만 상태였다.

지난 성탄절 주에는 연구실에서 자체 휴가 기간을 가졌지만, 나는 연구실에서 수행하는 외부 과제 때문에 하루도 쉬지 못했다. 심지어 성탄절에도 출근했다. 여유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이랄까, 짜증도 나고 서럽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휴가가 끝나고 이어진 연구실 엠티에 참가하지 않고, 기어코 나만의 휴가를 만들었는데, 그 때 읽은 책이 바로 박완서 할머니의 산문집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이다.

박완서 님은 작가이기 이전에 이제 연세가 여든 살이 넘은 할머니다. 이 책에서 그는 과거에 대한 회한과 그리움을 간직한 채 살아가는 그의 일상에 대해 편안하고 따뜻한 글로 들려 준다. 6·25 전쟁으로 인한 상처, 고향인 개성에 대한 향수, 그리고 떠나 보낸 사람들에 대한 애틋함이 솔직 담백하게 담겨 있다. 그런 마음을 가슴 한 켠에 두고 개성의 고향 집과 닮은 전원에서 정원을 꾸미는 소소한 그의 삶은 한 없이 멋져 보인다. 본 적은 없지만, 타샤 튜더 할머니의 오색찬란한 정원보다 살구 나무 아래서 가꾸는 그의 소박한 잔디와 텃밭이 훨씬 아름다울 것 같다. 나 역시 노인이 되면, 박완서 할머니처럼 화려함보다는 단순하고 원초적인 행복을 추구할 것이다.

새해부터는 삶을 때때로 돌아보며 좀 더 겸손하게 살기로 다짐했다. 결과적으로 한 동안의 우울한 마음은 이 책 덕분에 치유되었고, 새로운 자극제를 얻었다. 물질만능주의의 이 삶에서 한창 발버둥을 치고 있는 내가 미처 선택하지 못한 길들이 떠오르고, 그 길을 가지 못해 잃은 것이 얼마나 많을까 하고 생각해보니 모골이 송연해질 만큼 내 자신이 부끄러워진다.

* (1월 23일 추가) 충격이다. 이제 막 박완서 할머니를 알기 시작했는데, 세상을 떠나시다니... 하늘 나라에 있는 더 아름다운 길과 삶에서 늘 평안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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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1.02 19:26

    비밀댓글입니다

    • corvo 2011.01.04 08:50 신고

      반갑습니다. 제가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아름다운 길을 하나 못 간 셈이겠지요? ^^; 사실 제가 그동안 블로그 글을 부지런히 쓰지는 못했지만, 올해는 좀 더 알차게 꾸며보려고 해요. 자주 왕래하면 좋겠습니다. 방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2. 2011.01.03 14:53

    동익아, 네 블로그 폰트 맑은 고딕이지? 나도 이걸로 쓰고 싶은데 이글루스에는 이 폰트가 없더라고.. 근데 어떤 사람들은 이글루스에서도 이 폰트를 쓰던데. 혹시 어떻게 하는지 알아? 내 컴퓨터 폰트를 바꿔봤는데 그렇게 하면 내 컴터에서만 맑은 고딕으로 보이더라고..

    • corvo 2011.01.04 08:57 신고

      안녕? 우선 폰트를 바꾸려면 웹 페이지를 표현하는 언어인 HTML이나 CSS에 대해 약간의 이해가 필요한데, 어렵지 않으니 낯선 소스에 압도되지 않길! ^^

      1. 이글루스 로그인한 후 '바로 가기' - '스킨 에디터'에 들어간다.
      2. 전문가용 편집 탭을 누른다.
      3. 왼쪽에서 html/css 편집을 누른다.
      4. css 탭 선택한다(기본은 css 탭 페이지일 것임).
      5. css 편집 창 상단에 있을 아래의 코드를 찾는다.
      .body {
      width:100%;
      margin:0;
      padding:0;
      font-size:9pt;
      color:#000000;
      line-height:1.5em;
      background:#ffffff;
      }
      6. font-size:9pt;줄에서 엔터를 쳐서 color: 부분을 한 줄 밑으로 끌어내리고, 빈 줄에 아래의 소스를 붙여 넣는다.
      font-family:'Malgun Gothic',courier new,sans-serif;
      위 소스가 무슨 뜻이냐면, 맑은 고딕(Malgun Gothic) 폰트가 있는 컴퓨터에서는 맑은 고딕체로 블로그 내용이 나오고, 없는 컴퓨터에서는 Courier new 폰트가 출력되고, courier new 폰트도 없는 컴퓨터에서는 sans-serif가 출력된다는 뜻이야.

      참고로, font-size:9pt; 이부분은 글씨 크기를 9pt로 했다는 얘기인데, 10pt이나 11pt로 바꾸면 폰트가 더 커질거야.

      내가 이글루스 기본 스킨에 아이디를 만들어서 테스트를 해봤어. 나는 글씨 크기를 11pt로 바꿔봤어. http://corvo.egloos.com
      잘 안되면 또 물어봐~ ㅎㅎ

  3. 2011.01.04 14:45

    오... 고마워! 지금 해보니까 된다!^^ CSS에 완전 문외한이었는데...신기하다;;허허. 암튼 친절한 설명 정말 고맙! 지식인 뒤져봤는데 이렇게 쉬운 방법을 왜 못 찾았지;새해 복 많이 받으렴.

  4. 생각하는 돼지 2011.01.09 08:46 신고

    처음 방문하는 것 같습니다^^*
    좋은 책 소개 잘 보고 갑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 corvo 2011.01.09 20:51 신고

      감사합니다. 이제 영국은 점점 낮이 길어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는 시기겠군요. 뼈 속까지 스며든다는 영국의 겨울 추위에도 항상 건강하시고 즐거운 하루 보내시길! :)

  5. 2011.01.31 11:07

    비밀댓글입니다

    • corvo 2011.02.01 15:14 신고

      네, 정말 충격이었어요. 아드님 곁에서는 그리움이나 슬픔을 간직하지 않고 편하게 계실 수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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