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전문연구요원으로 병역을 이행하고 있는데, 지난 2월 9일부터 3월 8일까지 4주 동안은 병역특례자가 아닌 군인으로서 논산 육군훈련소에서 군사훈련을 받았다. 입소 전에는 추울 때에 가는 것이 걱정스러웠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오히려 2월이 훈련하기 좋은 시기인 것 같다. 한창 훈련을 받다 보면 추위가 잊히고, 땀에 절어 기분이 불쾌해질 일도 없으며, 눈이나 비도 거의 안 내린다. 게다가 막사 난방도 빵빵하다. 그러므로 적어도 여름에 가는 것보다는 낫다고 본다.

작년에 전문연구요원 구직 과정에서 여러 불운으로 힘들어했던 나는 군사훈련 기간 전후를 '인생 계획의 전환점'이라고 여길 정도로 무겁게 받아들이곤 했다. 그래서 최대한 전환점을 찍기 위해 일부러 훈련 기간을 가장 이른 시기로 고른 것인데, 사실 반대로 훈련 자체는 입소 당일까지 굉장히 가볍게 여기었다. 4주 후면 자대에 가는 것이 아니라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긴장감이 없었다. 물론 훈련소 안에 들어가서 조교들에게 통제를 받기 시작하자마자 그 안일한 생각은 싹 사라지긴 했지만...

논산에는 두번 다시 가고 싶지 않지만, 훈련 기간은 상당히 가치가 큰 시간이었다. 심신을 단련했고, 체중을 8kg나 줄였으며, 라이트펜을 통해 형설지공의 자세로 7권의 책을 읽었다. (나의 2012년 새해 로드맵에서 1분기 독서량을 10권으로 설정했는데, 3월 10일 현재 12권을 읽었으니 초과달성을 한 셈이다. 막사 안에 책이 있던 덕분이다.) 전환점을 찍은 후의 삶을 심도 높게 고민했고, 무엇보다 좋은 인연을 많이 만든 것도 훈련소 생활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나의 소속 중대는 의무경찰과 전문연구요원이 섞여 있었지만, 세부적으로 묶인 소대는 모두 전문연구요원이라 배경이 비슷했고, 개개인의 고민도 다 고만고만했다. 그래서 친구들을 사귀기가 수월했던 것 같다.

사실 남들보다 6~7년이나 늦게 훈련소에 가는 만큼 더 큰 가치를 얻으려고 노력하기도 했다. 현역 출신들이 '군사캠프'라 백번 놀려도 할 말이 없지만, 나름대로 분대장 훈련병을 맡으며 성실하게 훈련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동료 훈련병들로부터 독하다는 말을 몇 번 들었는데, 그 말을 들을 때마다 기분이 무척 좋았다. 사실 이전까지는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던 말이었고, 인생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두려운 나에게 외유내강한 자세가 절실히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제야 비로소 새로운 인생의 막이 열린 듯 하다. 물론 겨우 훈련소 다녀온 것 가지고 인증샷까지 올리며 유난을 떠는 것 같아 한편으로는 몹시 부끄럽다. 하지만 만학도들이 재밌게 공부를 하듯이, 나도 뒤늦게나마(전문연구요원 중에서는 보통 나이다) 군사훈련을 마쳐서 보람이 더 많이 생긴다. 훈련소에서 간신히 만들어 놓은 지금의 심신 상태가 오래오래 지속되었으면 좋겠다.

덧. 추울 때 내복을 입는 게 그렇게 좋은 줄 몰랐다. 훈련소에 있는 동안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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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elly 2012.03.10 10:19

    짝짝짝짝 다시 한번 훈련받느라 수고 많았어요!! 샤프해진 모습도 잘 어울리는 듯 :) 앞으로 더 화이팅합시다~~

  2. 한동훈 2012.03.10 15:31

    형 고생하셨어요~ 얼른 귀국해서 뵙고 스웨덴 사진 드려야되는데ㅠ

    • corvo 2012.03.11 15:43 신고

      당당히 현역으로 다녀온 너에게 몹시 부끄럽다. ^^;; 미국 생활 원없이 만끽하고 천천히 와~

  3. 산위의 풍경 2012.03.27 03:56 신고

    아들 입대보내고 왜그리 비가 자주오던지요. ㅜㅜ
    이제 보수교육 2주차지났고 2주간훈 자대로 갈텐데 부모마음은 늘 걱정이네요.^^

    • corvo 2012.03.28 20:32 신고

      안녕하세요? ^^ 4주 훈련만 하고 온 저로서는 아드님께 부끄럽네요. 통제된 생활이 불편하긴 해도 분명 가치가 큰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더 멋있어질 아드님 모습 기대하셔도 좋을 듯! 저도 아드님이 건강히 군생활 마치시길 기원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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