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카모토 류이치 아저씨가 또 한국에 왔다. 중학생 때 <BTTB> 음반으로 그를 알게 됐는데, 당시만 해도 나는 그가 엔니오 모리꼬네 할아버지만큼이나 만나기 힘든 사람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도 한국이 싫지는 않은지 몇 해 전에는 한국의 힙합 뮤지션인 MC 스나이퍼와 'Undercooled'라는 곡을 만들더니, 요새는 거의 매년 한차례씩 한국에 오는 것 같다. 재작년(2011년)에는 공연을 놓친지라 이번(2012년)에는 반드시 보러 가겠다며 벼르고 있었고, 내한 공연 소식이 귀에 들어오자마자 잽싸게 티켓을 샀다. 12월 9일 공연 티켓을 넉달 전인 8월에 예매한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사카모토 아저씨의 음반 중에서 <1996>을 제일 좋아한다. 첼로와 바이올린이 함께 연주하는 트리오 연주 음반이다. 때마침 이번 공연의 연주곡 중 절반 가까이가 이 음반에 수록된 곡들이었고, 나머지는 영화 <토니 타키타니> OST인 'Bagatelle (Piano Solo)'를 비롯하여 'Shizen no koe', 'Ichimei' 등 새로운 곡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곡과 곡 사이에 그가 직접 한국어나 영어로 연주곡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었는데, 한국어 실력이 인상적이었다. 약간 위화감은 들었지만, 발음도 좋았고 문장도 제법 길었다. 단순히 립서비스용으로 외운 문장이 아니라 한국어를 어느 정도 공부한 느낌이었다.

 

공연은 인터미션 없이 1시간 45분만에 끝났다. 관객들이 가장 크게 반응한 곡은 'Merry Christmas Mr. Lawrence'였지만, 나에게는 'Bibo no aozora'와 'Last Emperor'가 가장 감동적이었다. Bibo no aozora... 일본어인 '美貌の青空'를 로마자로 표기한 것인데, 뜻을 한국어로 직역하면 '미모의 푸른 하늘'이다. 무슨 뜻인지 와 닿지 않아서 일본 지인들에게 물어봤지만, 다들 아리송해 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곡 역시 꽤 난해해서 처음 들었을 때는 좀 지루했다. 하지만 꿈틀거리는 듯한 현악기의 선율을 듣고 있다 보니 긴장감 있게 흐르는 구름과 푸르고 아름다운 하늘이 머릿속에 그려졌고, 어느샌가 이 곡을 무척 좋아하게 되었으며, 들을 때마다 마음이 치유되는 듯한 기분도 들었다.

 

또한 영화 <마지막 황제> OST인 'Last Emperor'를 듣는 동안에는 중반부의 트레몰로 직후 나오는 피아노 솔로 부분에서 전신에 소름이 확 돋았다. 백발의 머리를 휘날리며 열정적으로 연주하던 사카모토 아저씨가 갑자기 이 부분에서는 관객들의 숨을 죽일 만큼 조심스럽게 건반을 다루었다. 그렇게 낸 아름다운 피아노 소리에 나는 감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공연 전 스태프틀이 튜닝을 하며 준비하는 모습을 아잉폰으로 교양 없이 도촬했다. 제일 비싼 R석 티켓을 덜컥 사서 허세를 부린 탓에 출혈이 몹시 컸지만, 다음에 사카모토 아저씨가 올 때도 나는 또 출혈을 감수하고 공연을 보러 갈 것 같다. 이번 공연 이후에도 며칠 동안 <1996> 음반만을 계속 반복해서 들었고, 영화 <마지막 황제>도 다시 봤을 정도로 공연 관람의 후유증이 컸다. 어찌 보면 이것 역시 티켓 값의 효용 아닐까? 아래 유튜브 영상도 공연 후에 처음 접한 것인데, 'Bibo no aozora'에 가사를 실은 버전이다. 노래를 부른 오오누키 타에코 아줌마의 목소리는 그야말로 '미모의 목소리(Bibo no koe)'인 듯...

 

사카모토 류이치 & 오오누키 타에코 - Bibo no aozora (美貌の青空)

댓글을 적어 주세요 (Add New Comment)

  1. 티제빠 2013.01.07 09:53

    오오누키 타에코? 영화 "Shall We Dance?" OST에도 있는 그 아줌마인가?
    나이 많은 가수인데..

    • corvo 2013.01.09 18:35 신고

      나이 많은 가수인 건 유튜브 비디오를 봐서 알게 됐는데, 영화 <쉘위댄스>의 OST를 부른 가수인 줄은 몰랐습니다. 근데 노래를 정말 잘 부르는 듯!

댓글 달기 (Subm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