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이래 여행을 떠난 횟수보다, 여행 계획을 취소하고 항공권 환불 수수료를 낸 적이 더 많았다. 회사에서 프로젝트를 마치고, 휴가를 받으려 할 때마다 새로운 프로젝트가 쉼 없이 들어와 발목을 붙잡곤 했다.

 

작년 4월 말, 발리 여행마저 무산되고, 연이어 맡은 프로젝트가 끝날 무렵의 어느 날, 아내가 갑자기 두 줄이 찍힌 임신테스터 키트 사진을 보냈다. 기쁘면서도, 믿기지 않아 초조해 했던 기억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출산 후에는 여행 기회가 더 줄어드는 게 자명한 현실이기에, 태교여행 만큼은 놓칠 수가 없어 아예 석달 전에 휴가를 신청했다. 휴가 직전까지도 회사 일에 여러 이슈가 있었지만, 다행히도 태교 여행을 떠나는 비행기에는 몸을 실을 수 있었다. 심지어 임산부인 아내 덕에 공항에서 패스트트랙 서비스도 받고 확실히 비행기에 탔다.

 

여행지는 터키와 그리스 섬. 여행 기간 내내 날씨가 맑고, 더위도 적당한 데다, 현지인들도 모두 친절하여 아무 탈 없이, 아무 근심 없이 쉴 수 있었던 즐거운 여행이었다.

 

 

 

2013년 신혼 여행 이후 장거리 비행기를 처음 탔다. 그동안 모은 마일리지를 탈탈 털어서 임산부인 아내는 비즈니스석에 태우고, 나는 이코노미석의 맨 앞자리에 탔다. 승무원들은 아내가 임산부라는 사실과 우리가 부부인 걸 알고, 무척 세심하고 친절하게 대해주었다. 착륙 직전에는 나를 비즈니스석으로 옮겨주기도 했다. 감동적이었다. 한국에 돌아와서 우리를 대해준 승무원들에게 칭찬해 달라는 글까지 항공사 홈페이지에 올렸을 정도다.

 

 

 

오후에 이스탄불에 도착하여 호텔 체크인을 하고, 다시 밖으로 나오니 해가 뉘엿뉘엿하고 있었다. 임산부인 아내를 데리고 무리하게 걷기에는 한계가 있을 것 같아 시내 구경 대신, 갈라타 교 주변에서 보스포루스 크루즈 투어를 했다. 크루즈 표 구입은 매우 쉬웠다. 갈라타 교에서 호객행위를 하는 삐끼들이 여행가이드북에 쓰인 가격보다 싼 값을 불렀다.

 

 

 

보스포루스 해협의 서쪽은 유럽, 동쪽은 아시아다. 아시아 쪽에서 뜨는 달이 유난히 붉고, 커 보였다. 보름달이라고 아내는 달을 보며 소원을 빌었고, 나도 덩달아 빌었다. 나는 가족의 안녕과 함께 아기가 건강하게 태어나라고 빌었는데, 아내는 뭐라고 빌었으려나?

 

 

 

대륙과 대륙, 유럽과 아시아를 잇기 때문에 여타의 현수교보다 훨씬 더 특별해 보이는 보스포루스 대교. 일찍이 아버지도 터키를 여행하신 적이 있어서 아버지와도 함께 카톡으로 이곳 사진을 교환했다.

 

 

 

이스탄불에서의 이튿날. 아쉽지만 그리스로 떠나는 날이기도 했다. 시간이 충분치 않아 아야소피아 성당만 구경하기로 하고, 대신 아야소피아 성당과 블루 모스크가 모두 보이는 곳(Seven Hills)에서 아침 식사를 했다. 원래 나는 사진 찍는 걸 매우 꺼리지만, 화창한 하늘 아래 옥상에서 밥을 먹으니 기분이 좋아져서 오랜만에 허세 넘치는 포즈를 취해 봤다.

 

 

 

아버지가 직접 여행하면서 사진으로 보여주신 곳 중, 실제로 가보고 싶었던 곳이 두 군데 있는데, 두 군데 모두 카톨릭과 이슬람이 섞여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중 한 곳이 바로 여기, 아야소피아 성당이다. 카톨릭과 이슬람, 여러 종교가 거쳐간 금빛 교회의 흔적이 역설적으로 무척 조화로워 보였다. 카메라에 담기에는 성당이 너무나도 크고 웅장했다. 에펠탑 본 것보다 훨씬 감동적이었다.

 

(참고로 다른 한 곳은 스페인 그라나다에 있는 알함브라 궁전이다.)

 

 

 

감질나는 이스탄불 구경을 마치고, 그리스 아테네를 경유하여 그리스 미코노스 섬으로 향했다. 유명한 산토리니 대신 미코노스를 고른 까닭은, 무라카미 하루키가 낸 기행문인 <먼 북소리>에서 미코노스 섬을 한 달 반이나 머물렀을 정도로 아름다운 섬이라 표현했기 때문이다.

 

 

 

공항에서 택시를 탔더니 게이 커플과 합승을 시키고는 이 주변에서 내려줬다. 미코노스 중심가는 골목이 작아서 차가 다닐 수 없기 때문이다. 숙소로 가는 길이 미로 같아서 헤맸지만, 석양을 보면서 잠시 릴랙스 할 수 있었다. 이런 곳에서 저녁을 먹으면 없던 입맛도 생기고, 뭘 먹어도 맛있을 것 같다.

 

 

 

아무래도 섬에 와서 그런지 수블라끼 같은 그리스 전통 음식보다는 해산물이 더 당겼다. 미코노스 섬에서 사람들이 줄을 서서 먹을 정도로 인기인 Captain's에서... 적당히 시원한 밤의 바닷바람이 입맛을 더 돋구었다.

 

 

 

여행 셋째 날. 아침에 눈을 떴더니 창 밖으로 귀여운 아기 고양이 한 마리가 머리만 빼꼼 내밀고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귀여워서 방문을 열고 나가 다가갔더니 다른 형제들이 있는 곳으로 도망갔다. 어른 고양이와는 달리 아직 어려서 경계심이 많았다.

 

 

 

우리가 미코노스에서 머문 첫 번째 숙소 이름은 '카보나키 호텔Carbonaki Hotel'이다. 호텔의 아침 키친. 나중에 이런 인테리어 컨셉으로 흉내를 내 보고 싶다.

 

 

 

호텔 주변의 골목길. 음식점, 수공예품, 올리브 오일이나 비누 등을 파는 아기자기한 가게들이 많다. 산토리니 못지 않게 미코노스도 이미 오래전부터 이렇게 매년 흰색과 파란색 페인트로 골목을 가꾸고 있었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색감으로 펜션을 꾸며놓은 데가 많이 있던데, 그 펜션들이 싼마이 같아 보일 수밖에 없는 건 어쩌면 뿌연 하늘 탓이 아닐까? 미코노스의 하늘은 정말 물감처럼 파랗다.

 

 

 

미코노스에는 리틀 베니스라 불리는 골목이 있다. 해변을 따라 형성되어 있는 마을인데, 여기서 수수한 분위기의 식당을 찾아 그리스 음식을 먹었다. 왼쪽은 수블라끼Souvlaki, 오른쪽은 무사카Moussaka다. 둘 다 기본적으로 빵과 각종 구운 고기를 함께 먹는 단순한 음식인데, 맥주를 좋아하는 나에게는 그저 맥주를 부르는 맛이었다.

 

 

 

 

미코노스의 해변. 미코노스뿐 아니라 여행 기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해수욕을 했다. 이날부터 중심가를 빠져나와 렌터카를 몰고 본격적으로 섬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여행 기간 중 최대의 위기에 빠진 날이기도 하다.

 

*다음 글: 터키 & 그리스 태교여행 2 - 하루키가 사랑한 미코노스에서 (Mykonos, Greece)

 

Canon EOS 40D (사진에 corvo로 표기)

iPhone 5S (사진에 corvi로 표기)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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