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유학처를 오갈 때 일본항공(JAL)을 애용한다. 항공권도 저렴하고, 기내도 쾌적하고, 기내식도 맛있고, 일본 경유 중에 며칠이고 체류할 수 있으며, 기내 비디오 채널이 다양해서 장거리 비행도 지루하지 않다. NHK뉴스 보고, 기내식 두 번 먹고, 영화 네다섯편 보고 나면 금방 목적지에 도착한다. 이번에 런던에서 오사카로 가는 비행 중에 본 영화들을 보고 리뷰를 간단히(?) 써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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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베

(母べえ, Kabei: Our Mother, 일본, 2008) ★★☆
마음이 따뜻해지는 가족영화가 좋아서 제일 먼저 이 영화를 골랐다. 갸냘프고 연약해 보이지만, 아내이자, 어머니이자 여자로서 흔들림없이 강하게 살아가는 '카베'의 삶을 중심으로 그린 영화. 서로가 엄마를 카베, 아빠를 토베, 첫째딸을 테루베, 둘째딸을 하츠베라고 부르는 모습이 귀여웠고, 가난하지만 밝게 사는 모습이 참 정겨워 보였으며, 토베가 철창 신세를 지게 된 후에도 그들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인물이 세 명씩이나 등장하기 때문에 그들의 일상적인 이야기를 보는 것이 처음에는 참 흐뭇했다.

그렇지만 이야기가 너무 길었다. 영화에 극적 요소도, 감동을 주는 부분도 전혀 없다보니 시간이 지날 수록 너무나 지루해졌다. 러닝타임도 2시간을 가뿐하게 넘겨주셨다. 영화를 보다가 너무 잠이 와서 일시정지 버튼 누르고 잠시 '쉬었다가' 봤을 정도.

이 영화를 가장 먼저 고른 것은 현명한 선택이 아니었다. '카베'를 보느니, 차라리 릴리 프랑키의 '도쿄타워 - 어머니, 나, 그리고 때때로 아버지'를 한 번 더 보는게 나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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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블루베리 나이츠

(My Blueberry Nights, 미국, 2008) ★★★★
나는 왕가위가 그리는 사랑 이야기는 절대 유치하지 않을 것이라는 선입견을 갖고 있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도 그 선입견이 깨지지 않았다. 인간의 감정을 인간의 언어로 100% 표현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의 이 영화를 통해서, 언어가 아닌 다른 수단으로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해 공감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번에 본 영화들 중 가장 마음에 들었다.

왠지 보랏빛을 연상시키는 영화 특유의 색감도 예뻤고, 잔잔한 스토리 구성도 지루하지 않았으며, 특히 영화에 삽입된 음악들이 좋았다. 왕가위 감독 영화 치고는 그리 난해하지도 않고... 영화에 대한 조예가 얇디 얇은 내 수준에 보기에는 딱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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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게 살자

(한국, 2007) ★★★☆
'오만명 정도 봤으려나?'라고 생각하고, 기대없이 본 영화. 그 덕분인 지도 모르겠지만, 꽤 재밌었다. 권선징악이 무색해진 요즘 세상을 향해서, 바보같아 보일만큼 착한 주인공이 유쾌하게 복수를 하는 내용.

코메디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유머러스한 대사를 거의 찾을 수 없지만, 주인공의 무표정이 보는 사람을 내내 웃기게 했다.

특히 우산 속에서 얼굴을 살짝 내밀 때의 그의 무표정이 압권이었다. 아무 생각도, 악의도 없어 보이는 그의 '순수한' 무표정이 관객에게는 우스워 보였겠지만, 영화 속의 악역에게는 무서워 보였을 터. 과연 정재영의 연기에는 감탄사를 아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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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코
(奈緒子, 일본, 2008) ★★★
드라마 '노다메 칸타빌레'에서의 우에노 쥬리만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이 영화에서 분한 그녀의 모습을 보면 많이 놀랄 지도... 그녀는 말수가 적고, 우울한 캐릭터도 잘 소화하는 배우라고 생각한다. 결말이 빤히 보이는 청춘영화지만, 일본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나름의 반전이 있고, 긴장감도 돈다.

시골이 배경인 여느 일본영화와 마찬가지로, 이 영화도 그림이 참 예쁘다. 특히 바다가 예쁘다. 난 비록 작은 기내 모니터와 저질 사운드로 감상했지만, 영화관의 스크린으로 보고 들으면 속이 뻥 뚫릴 것 같을 만큼 바다 풍경과 파도 소리가 멋진 영화였다. 우에노 쥬리가 주인공이기 때문에 우리나라에도 머지 않아 개봉할 듯.

그리고 이 영화를 보고 한가지 깨달았다. 역시 우에노 쥬리는 짧은 머리가 더 어울린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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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객

(Le Grand Chief, 한국, 2007) ★★☆
줄거리는 괜찮았으나 아쉬움이 상당히 많이 남는 영화다. 음식을 어떻게 만들어야 맛이 나는지에 대한 설명이 거의 없다. 마치 값비싸고, 질좋은 재료로 만드는 것만이 최선이라는 것을 강조한 듯 하다. 그렇게 음식이 많이 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한번도 군침이 돌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 영화 탓이다. 원작이 만화인 걸로 알고 있는데, 더 능력있는 감독과 스탭을 만났다면 훨씬 좋은 영화가 되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 속에서 유일하게 나를 슬프게 했던 장면은 주인공인 성찬이 키우던 소의 눈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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