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나는 가끔 착각한다. 아침에 밖으로 나서면 축축한 풀냄새 나는 시원한 공기와 닿을 것 같고, 더비나무도 언제든 볼 수 있을 것 같고, 지갑을 열면 파운드화 지폐가 나올 것 같다. 그러나 착각은 착각일뿐, 지금 내 일상의 배경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초록의 숲과 들판이 아니라 회색의 아스팔트 바닥과 빌딩 숲과 탁한 하늘이다. 나도 이제는 유학생이 아니라 한 명의 서울시민으로 하루하루 치열하게 살아야한다. 해외여행도 이제는 언감생심이다.

내 나이 스물 다섯. 영국에서 보냈던 20대 라이프의 전반은 이제 끝났고, 지난 5월 15일에 길고 긴 유학생활을 마치고 귀국했다. 오자마자 산업공학 석사과정 진학을 위해 한동안 이 대학 저 대학에서 면접시험을 봤고, 연세대학교에 이어 마침내 서울대학교에서도 합격 통보를 받았다. 몇몇 대학은 불합격의 쓴 잔을 마시게 했지만, 마지막에는 결국 1지망 대학에 합격되었다. 학부 성적이 좋지 않은 데다, 취업난으로 대학원 입시 경쟁률이 수직상승한 바람에 지난 1년 내내 마음 고생했는데... 결과가 좋아서 무척 기쁘다.

일단은 곧 시작될 20대 라이프의 후반이 무섭다기보다는 설레고, 신기하다. 그동안 한국 친구로부터 말로만 들어왔던 '수강신청'이니 하는 단어도 이제는 곧 내 생활의 일부가 될 것이고, '09학번'이라는 약간의 사기성(?) 신분을 가진 것도 우습고, 심지어는 대학원 관련 안내문이 영어가 아니라 한글이라는 것도 신기하다. 한국이 나의 모국인데도 왠지 한국으로 유학온 듯한 느낌마저 든다. 내가 외국에 오래 살긴 했나보다.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아이가 된 것 같은 기분이다.

물론 앞으로 다가올 힘듦을 예감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지난 4월에 면담한 서울대학교의 교수님이 말씀하셨다. 대학원 생활 2년을 버티고 나면, 어떤 직장에 들어가도 잘할 수 있을 거라고... 더구나 나는 한국의 조직 생활에 적응하는 과정도 거쳐야 하기에 남들보다 더 힘든 삶을 보내야 할 지도 모른다. 아마도 힘들 때마다 떠올려야 할 것 같다. 대학원 입학을 향한 지금 나의 이 절실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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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Elly 2009.07.12 02:09

    히히히히히히 여기에다가는 1등으로 축하글 남길 수 있겠네!! 다시한번 축하축하해요!! :)

    • corvo 2009.07.12 13:48 신고

      히히히히히히 고마워요!! 합격 통보를 받은 그 때 그 순간을 잊지 않으며 지내야지. :)

  2. nina 2009.07.19 02:22

    우리집으로놀러와요

    • corvo 2009.07.20 10:45 신고

      핍 안그래도 어떻게 지내나 궁금했다. 고군분투 하느라 외롭고 힘들 때 많을텐데.. 바쁘겠지만 종종 보자!

  3. 로프트쥔장 2009.07.31 20:28

    대학원 생활 2년 버티면 어떤 직장에 들어가도 잘할 수 있을...그건 경기도 오산! 입니다.하하하.

    • corvo 2009.08.01 04:27 신고

      하하하 사실 이미 대학원 연구실 출퇴근 시작한 지 한달 됐는데 경기도 오산 맞는 것 같아요. 워크로드가 크기는 하지만, 인간관계 측면에서는 아무래도 직장보다 훨씬 부담이 덜한 듯.:)

  4. Xnps 2009.09.04 11:04

    일단은 군대를 연기할 수 있다는 사실이 크나큰 행복인 것이고
    한국에서의 대학생활이라.. 내게는 꿈만같은 이야기.
    나도 내년 이맘때쯤 이런 게시물을 올릴 수 있었으면 좋겠네.
    기도좀 해주이 :) 난 대학원도 일본에서 갈것 같긴 하지만 ㅋ

    • corvo 2009.09.05 14:49 신고

      엄밀히 말하자면 난 군대를 안가도 되게 된 셈이지. 전문연은 곧 취업이니까... 뭐 어디까지나 무사히 졸업하고, 취업한다는 전제 하에서의 이야기지만..

      대학원은 일본으로 가는 게 좋은 듯! 오사카대학 다니는 사람 블로그를 봤더니(chaika.tistory.com) 석사 과정이 뭔가 더 합리적으로 짜여져있다는 느낌이 들었어.

  5. 강정민 2009.09.07 10:33 신고

    방금 그 사람 블로그 가서 글 읽고 왔는데 나도 얼렁 가고 싶다 :)
    오사카대학이면 일본에서도 손꼽히는 국립대학이니 국가차원의
    지원도 상당히 괜찮지.
    하지만 연구실은 역시나 연구실마다 차이가 있는 모양이더라구.
    여기 연구실도 소위 교수님이 "빡세다"는 연구실은 출퇴근이 엄격하고
    수업에 연구에 완전히 치여서 살더라... 밥도 혼자 먹으러 못 가고..
    역시 교수님을 잘 만나야돼 :)

    • corvo 2009.09.07 22:50 신고

      아 일본도 케바케(Case by Case)구나.ㅋㅋ 난 1년차에는 수업 위주로 듣고, 2년차부터 논문이나 프로젝트에 신경쓴다는 점이 꽤 인상적이었어. 그게 더 좋은 output을 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던데.. 뭐 내가 더 있어보고 경험해봐야 알겠지. 사실 나도 일본 대학원에 지원은 했는데 떨어졌어.ㅠ.ㅠ 부디 형은 1지망하는 곳에 합격하길! 기도할게!

  6. 이민형 2010.07.14 18:21

    작년글이지만 반가움은 아마 울딸이 아직 그학교 학생이고 일본에 교환학생중이리라.

    시간도 꽤지났으니 경기도 오산은 아니겠지요?
    앞으로 행운과 좋은결과바람니다.

    • corvo 2010.07.15 12:53 신고

      이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대학원에 온 지도 일 년이 지났습니다. 따님도 서울대 재학생이시군요. 대학원 생활은 비록 힘들기는 하지만, 재미도 있어서 박사 과정으로 올라갈지 고민중이에요. :) 격려 정말 감사합니다.

  7. ky0318h 2012.11.25 22:46

    d어 축하드려요~
    저도 지방국립대에서 조선해양공학을 전공하고있는데 학교가 좋지 못한 학교라...대학원생각중인데 경쟁률은 어느정도인가요??
    그리고 텝스나 IBT준비 중에 어떤게 좀 더 유리한지 그리고 학점은 어느정도여야하나요.....?ㅠ

    • corvo 2012.11.29 09:31 신고

      안녕하세요? 축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검색어로 들어오셨군요. 저는 사실 이미 1년 전에 졸업까지 했습니다. 제가 서울대 산업공학과 대학원 입시에 지원했던 2009년 후기에는 4명 선발에 13명이 지원했으니 3.25:1이었네요. 지금도 별 차이는 없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서울대 산업조선공학부는 이름만 합쳐져 있지 사실상 서로 연관되어있는 게 전혀 없어서 아는 정보가 없네요. IBT가 좋은지, 텝스가 좋은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본인에게 유리한 시험을 치르세요. 학점은 기본적으로 4점은 넘어야 경쟁력이 있습니다. 아무쪼록 좋은 결과 있으시길!

  8. 2013.10.30 21:45

    비밀댓글입니다

    • corvo 2013.11.06 10:37 신고

      일부 랩에는 여자가 더 많구요, 어느 랩이든 성별 때문에 불리한 점은 전혀 없습니다.

  9. 2016.02.03 11:45

    비밀댓글입니다

    • corvo 2016.02.08 13:12 신고

      안녕하세요? 우선 저는 7년 전에 대학원에 입학했기 때문에, 지금과는 좀 다를 수 있습니다. 5월 졸업 예정이라면, 3월쯤 희망하는 연구 분야의 교수님을 사전 컨택하고(직접 찾아뵈어 입학 희망 의사와 연구 계획 전달), 4월에 입시 지원서를 제출하여, 5월 중순~하순에 면접과 시험을 보는 게 일반적입니다.
      학교 별, 전공 별로 면접 시험은 다르며, 서점에 가셔도 대학원 입시요용 문제집 같은 건 없습니다. 공대는 보통 핵심 과목 전공 시험을 치르는데, 경영대는 잘 모르겠네요. 잘 준비하셔서 합격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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