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꽤 오래전부터 D를 짝사랑해왔다. 작년 여름부터 D를 바라보기 시작했고, 지난 3월 초에 고백을 했다. 낭만은 없지만 이메일로 내 마음을 전했다. 음성이나 편지로 전달하는 것보다는 이메일이 그나마 D에게 덜 부담을 주는 방법이라고 생각했으니까... 몇 줄밖에 되지 않는 짧은 메일이었지만 아직 나를 잘 모르는 D에게 실례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며칠동안 십수차례나 글을 다듬었다. 그리고 두근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지 못한 채 한참을 망설이다 간신히 '보내기' 버튼을 눌렀다.
 
내 마음이 담긴 그 메일을 보낸 시간은 한국시각으로는 늦은 오후, 여기시각으로는 이른 아침이었다. 전날 밤에는 도무지 용기가 나지 않아서 아침에 맑은 정신으로 보냈다. 그러나 아침에 보낸 것에 대한 부작용도 있었다. 'D가 내 메일을 봤을까?', '혹시 내 메일을 보고서도 대답을 해주지 않으면 어떡하지?'하는 불안감 때문에 그 날 하루종일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심지어 밥도 제대로 먹지 못했을 정도였다. 고백 전 못지 않게 고백 후 상대방의 대답을 기다리는 것도 제법 고통스러운 일이라는 걸 다시 한번 뼈저리게 깨달았다.
 
D로부터의 답장은 다행히도 하루만에 왔다. 무척 까탈스럽고, 무서울 줄 알았는데 의외로 친절하게 답장을 써주었다.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주어 고맙다는 말로 시작했고, 3월말에 귀국하면 꼭 만나자는 말도 했다. 일단은 나를 안심시키는 대답이었다. 그러나 D가 내 마음을 받아주었다고는 아직 생각하지 않는다. D를 짝사랑하는 사람이 나 말고도 몇 명 더 있을 것이고, 나 또한 내가 D에게 어장관리를 당할 지도 모른다는 것 정도는 잘 알고 있다. 그래도 나는 상관없다. 설령 남들이 바보같아 보인다며 놀릴 지라도 나는 계속 이렇게 D에게 절실하게 매달릴 것이다.
 
사실 내가 D를 짝사랑하고 있다는 것은 우리 부모님도 알고 있다. 처음에는 나의 시야를 좀 더 넓히라며 D를 짝사랑하는 것에 대해 반대하셨지만, 이제는 나를 이해해주신다. 시야가 너무 넓으면 정작 필요한 것을 찾기가 더 어려워지는 법. 그러므로 D와 함께 보내는 미래가 훨씬 밝다는 게 내 생각이다. 게다가 D는 부자라서 함께 있게 된다면 나의 경제적 여건도 훨씬 나아질 것이다. 무엇보다 D와 함께라면 그 어떤 고통도 이겨낼 자신이 있다.
 
그럼 대체 D가 누구길래 내가 이렇게 집착을 하냐고? 성은 대, 이름은 학원이다. ㅇㅇㄴ이 아닌 다른 여자를 바라보는 게 아니라, 국내 대학원의 산업공학과 입시를 준비하고 있다. 산업공학 연구분야 중에서도 나는 특히 생산시스템 분야에 관심이 많아서 제품공학이나 동시공학 랩에 지원할 계획이고, 위에 언급한 '러브레터'는 내가 지망하는 대학들의 랩 교수님들께 보낸 것이다. 두 분야 다 근본적으로는 기업이 생산하는 제품이나 서비스의 개발 및 생산 프로세스를 빠르고, 효율적이며, 튼튼하게 최적화시키는 방법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내가 정말 재미있게 공부할 수 있는 분야지만, 국내 대학 출신 경쟁자들의 스펙이 만만치 않고, 더구나 취업난으로 인해 대학원 지원자수가 급증할 것 같아서 합격 여부에 대한 불안감이 크다.
 
그 탓에 요즈음 나는 수면제를 처방받을 정도로 극심한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다. 어쩌다 일찍 잠든 날에는 영국아이들이 장난으로 새벽에 화재경보음을 울리기 일쑤이고, 대개는 서너시간 이상 침대에 누워 뒤척이거나, 때때로 수면제를 반 알씩 복용한다. D에 대한 짝사랑으로 인해 나는 요즈음 가슴앓이를 심하게 하고 있는 셈이다. 그래도 나의 마음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올 초여름에는 틀림없이 D가 한 명을 고를 것이고, 나는 그 한 명이 내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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