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오카야마에서
역유학 생활을 시작한 지, 즉, 대학원 연구실에 출근을 하기 시작한 지 2주가 되었다. 연구실 생활 자체는 그럭저럭 만족스럽다. 아직 연구를 하는 단계도 아니고, 프로젝트에도 투입이 되지 않아서 겉도는 감이 없지는 않지만, 연구실 선배들이 늘 친절하게 도와주고 있고, Post Doctor 형으로부터 여름 방학 기간 중에 배우고 있는 스케쥴링 이론 공부도 흥미롭다. 이공계 대학원은 어떤 공부와 연구를 하는 것 못지 않게 어떤 사람들과 어떤 환경에서 지내느냐가 상당히 중요한 문제인데, 그런 면에서 다행히도 나는 운이 참 좋았다. 다만, 연구실의 한 사람으로서 빨리 정착하려면 당분간 마음 고생을 각오해야 할 듯 한데, 나 자신의 노력만 충분하다면 앞으로 대학원생으로 지낼 2년 동안 큰 어려움은 생기지 않을 것 같다. 물론 어디까지나 희망사항이지만...

그런데 '연구실'에서 '한국'으로 영역을 넓히면 상황이 좀 달라진다. 넋두리지만, 요즈음 나는 한국 생활이 역시 만만치 않다는 걸 몸으로 깨닫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스웨덴, 영국, 일본 등 해외에서 7년 가까이 살았던 나는 정서적으로 이미 너무 많이 변하고 만 것이다. 한국의 보편적인 사고방식에 나 자신을 맞추어가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느끼고 있고, 내가 그동안 살아왔던 곳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들을 겪을 때마다 무척 난처하다. 외국에서 겪었을 때와는 달리 그런 과정이 전혀 즐겁지도, 신기하지도 않다. 그러다 보니 나 자신의 언행 하나하나에도 조심스러워지고, 결국 마음이 불편해질 수밖에 없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모국에서 이방인이 된 듯한 기분으로 산다는 것은 외국에서 외국인으로 사는 것보다 훨씬 큰 고통이다. 오히려 외국에서는 외국인이기 때문에 용서받을 수 있는 범위가 있었지만, 한국에서는 내가 느끼는 이질성을 드러내는 것 자체가 매우 위험한 행동이니까...

사실 나는 유학을 떠나기 전인 고등학생 시절까지만해도 서울이 굉장히 멋지고, 낭만적인 도시라고 생각했다. Toy의 '세검정'이란 곡이 좋아서 어른이 되면 효자동이나 부암동, 평창동 같은 동네에서 살고 싶다는 꿈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한참이 지나 다시 온 서울은 변했고, 나도 변했다. 얼마 되지 않는 기대치였음에도 불구하고, 현실 사이에는 괴리가 존재했다. 외국에 있었을 때와는 달리 고립된 듯한 느낌이 들고, 심지어 때때로 현기증도 난다. 서울이 고향인 나로서는 매우 서글픈 일이다.

애당초 나는 국내 체류 기간을 5년으로 계획하고 귀국했다. 국내 대학원에 진학한 것도, 석사 졸업 후 전문연구요원으로 3년간 국내에서 사회생활을 해야 하는 것도 내가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이다. 그러나 그 운명의 울타리로부터 해방될 5년 후에는 가급적 일본이나 유럽으로 돌아가고 싶다. 아직 가보지는 않았지만, 미국이나 싱가포르도 괜찮을 듯. 대단히 이기적이고, 심약한 발상인 지도 모르겠지만, 그저 한 인간으로서 조금 더 편한 곳에서 살고 싶은 생리적인 욕구는 이렇다. 사실 따지고 보면 거기서 좋은 한국인으로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 모국을 위해서도 좋은 일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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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7.13 21:51

    비밀댓글입니다

    • corvo 2009.07.13 23:50 신고

      태터 기반의 블로그는 비밀댓글에 문제점이 있군요. 수정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봐야겠습니다.ㅠ.ㅠ 사진은 일본 오카야마에서 찍었습니다. Japan 폴더에 오카야마 여행사진이 있으니 시간 나실 때 한번 구경해보세요.:)

      한국에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다보니 낯설게 느껴지는 부분이 많아서 제 자신이 충격을 조금 받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시간이 지나면 차츰 나아지겠지요? 물론 제 자신의 의지도 아주 중요하겠지만 말입니다.

      통학길이 다소 먼 덕분에 요즈음 전철 안에서 항상 책을 읽고 있는데, 좋아하신다는 그 책은 저도 조만간 서점에 들러 꼭 읽어보겠습니다.:)

  2. 2009.07.15 01:40

    나야 고작 교환학생 10개월이었지만 네 말에 동감이 간다. 기회만 된다면 굳이 한국에서 살 필요 있을까 싶기도 하고... 예전에는 그래도 내 나라 내 땅에서 뭔가 바꿔보자 했는데, 이제는 그저 내 한 몸 즐겁게 사는 게 더 중하다 싶고. (웬 노인행세인지;) 한국에서의 삶은 말 그대로 매일매일 '전투'를 치르는 듯. 암튼 힘내시요.

    • corvo 2009.07.17 12:17 신고

      어제 EBS보다가 세계테마기행이라는 프로에서 하림씨가 아일랜드 여행한 게 나왔지. 유럽 라이프를 십분 즐기다 오지 못한 게 한이 되었는 지 눈물이 날 지경이었어.ㅠ.ㅠ 그 덕에 사실 대학원 합격이라는 걸 얻은 거라고 위안하고는 있지만.. 한국 라이프에 완전히 정착하는 과정이 참으로 험난할 듯.ㅠ.ㅠ 아무튼 이 땅에서 당분간 우리 열심히 살아봅시다.

  3. 미르 2009.07.22 01:38

    세계테마기행!!
    나 군에 있을 때 내가 모시던 분이 그 프로그램 매니아셨어. ㅋㅋ

    • corvo 2009.07.22 21:39 신고

      아~ 나도 종종 보는데 가끔 이 프로그램 속 여행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곤 해. ㅋㅋ

  4. 지나가다 2009.08.03 12:39

    지나가다 남겨요^^
    저도 25년 인생 중 약 14년을 타지에서 보냈어요. 유학생 자녀로, 유학생으로.. 이쯤 되면 어딜 가도 집 같고, 어딜 가도 이방인으로 살게 되는 것 같아요. 더군다나 "모국"이어야할 한국이 낯설어지는 자신을 발견할 때엔, 정말 내가 속한 곳은 어딜까-라는 생각을 하게되죠.

    전 달나라에 가서 살면 어떨까싶지 말입니다.

    • corvo 2009.08.05 13:33 신고

      반갑습니다. 댓글 감사해요. 유년 시절도 타지에서 보내셨군요. 어딜 가도 집 같고, 어딜 가도 이방인 같다는 말씀에 1000% 공감합니다. 저도 달나라가 어떤 곳일 지 궁금해요. :)

      개인적으로는 homogeneous하거나, 반대로 다양성이 인정되는 사회라면 나을텐데 지금은 과도기인 듯, 어중간한 상태라 어느 곳에도 쉽게 제 자신을 소속시키기 힘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차츰차츰 나아지겠지요? :)

  5. xnps 2009.09.04 14:13 신고

    남 얘기가 아니네 :)

    • corvo 2009.09.05 14:43 신고

      해외 체류를 오래한 사람들에게는 반드시 '오춘기'가 오는 듯. 자신의 identity를 또 한번 찾아야하니.. :(

  6. 2012.04.09 02:45

    비밀댓글입니다

    • corvo 2012.04.09 15:01 신고

      제가 귀국하여 이 포스트를 쓴 지 3년이 다 되어가네요. 그래도 이때보다는 한국 생활이 많이 익숙해진 것 같아요. 여전히 외국 생활이 그립긴 하지만..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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