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중학생 때, 영화 '철도원'과 '러브레터'에서 본 홋카이도의 풍경에 반하여 일본 안에서도 홋카이도를 제일 먼저 여행했다. 지금도 나는 이 곳을 일본에서의 내 고향이라고 여기고, 늘 애틋하게 동경한다. 2005년과 2006년에 이미 두 차례에 걸쳐 꽤 오랫동안 홋카이도에 머물렀는데, 여름에 여행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설경으로 유명한 홋카이도지만, 여름에도 장마의 영향이 미치지 않아서 여행하기가 참 좋다. 내가 이번에 홋카이도에 머무는 동안에도 한번도 비가 내리지 않았다.

3년 반 만에 홋카이도 특유의 건조한 공기를 내 피부로 느낀 순간, 오만가지 감정이 교차하여 가슴이 뭉클해지기까지 했다.

 



이번에는 렌터카를 빌려서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돌아다녔다. 내가 빌린 차는 '락티스(Ractis)'라는 이름을 가진 1300cc 소형 토요타 해치백이다. 배기량이 적어 힘은 부족하지만, 귀여운 맛에 재밌게 타고 다녔다.

일본에서 운전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핸들과 운전방향이 한국과 반대지만, 주행 자체는 곧바로 적응됐다. 오히려 한국보다 일본에서 운전하는 게 더 편할 정도였다. 다만, 좌우깜빡이와 와이퍼 레버마저 반대인 것은 주행과 달리 항상 의식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보니 쉽게 익숙해지지 않았다. 한국에 돌아오고 나서도 한참 동안 깜빡이를 켜야 할 상황에 와이퍼를 돌렸다.-_-;





한참동안 국도를 타고 처음 간 곳은 카미후라노 지역에 있는 플라워 랜드다. 꼭 우화에 나오는 배경 같다. 토끼와 사슴 같은 동물들이 나타나서 나에게 유창한 인간의 언어로 말을 걸 것만 같았다. -_-;





토미타라는 사람이 라벤더 농장을 운영하면서부터 이 곳이 홋카이도의 관광지로 유명해졌다. 토미타(富田)와 후라노(富良野) 모두 한자로 표기할 때 부유할 부(富)자로 시작한다. 토미타라는 인명과 후라노라는 지명 사이의 관계가 있는 것일까? 한번 알아봐야겠다.





부지런히 꽃들을 가꾸고 있는 직원들. 절정기인 7월 이후에 올 손님들을 위해 준비하는 것 같았다. 여기는 오토바이도, 직원들의 유니폼도 모두 라벤더와 같은 보라색이다.





이 곳이 후라노를 대표하는 곳이다. 형형색색의 꽃들이 만개할 때 가장 예쁜 곳인데, 6월 말에 가기에는 시기가 너무 일렀다. 꽃이 거의 피어 있지 않았다. ㅠㅠ





라벤더들도 아직 만개하지 않아서 보랏빛이 희미하다. 사진으로는 찍지 않았지만, 여기서 파는 라벤더 아이스크림이 정말 맛있다.





여기서부터는 비에이 사진.





기차로 이동하지는 않았지만, 기차역사가 예뻐서 플랫폼에도 들어갔다 나왔다.





비에이에는 윈도우즈 XP 바탕화면과 비슷한 풍경이 곳곳에 있다. 특히 경치가 예쁜 곳에는 이름이 지어져 있다. 마일드세븐 언덕에서.





홋카이도의 찻길 주변 풍경이 워낙 예쁘다보니 운전이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어느 국도로 다녀도 길이 한적하다. 다만, 밤에 삿포로로 돌아가는 길에는 차가 한 대도 다니지 않는데다 폐쇄된 길도 많아서 꽤 무서웠다. -_-;





국도변에 우뚝 서 있는 포플러 나무. 이 나무에는 '켄과 메리의 나무'라는 이름이 있다. 40년 전에 닛산자동차의 선전에 배경으로 나와서 일본에서 유명해졌다고 한다.





이 쓸쓸한 나무 한 그루가 비에이의 심볼이나 다름 없을 만큼 유명하다. 이름도 '철학의 나무'라고 한다. 겨울에 또 와서 눈에 덮인 들판과 이 나무를 보고 싶다.





차를 잠깐 세우고 경치 보기를 십수차례 넘게 반복했다.





비에이의 경치에 감탄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나도 노인이 되면 이렇게 아담한 언덕 밑에 집을 한 채 지어 동물들을 키우며 살고 싶다.





마일드세븐 언덕에서 본 저녁 노을.

후라노는 인간에 의해 가꾸어진 느낌이 강하지만, 비에이는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그대로 갖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후자인 비에이가 더 마음에 들었다. 작은 찻길만이 놓여져있을 뿐, 비에이에는 상업화된 곳이 거의 없어서 좋았다. 사실은 '마일드세븐 언덕'이니 '철학의 나무'니 '켄과 메리의 나무'니 하는 이름도 그리 달갑지는 않았다. 숙박시설도 딱 지금 정도면 충분하고, 입장료를 받고 들어가야 하는 공원 따위도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지금 이 모습 그대로를 영원히 간직했으면 좋겠다.

2010년 6월
일본 홋카이도
Lomo L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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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민형 2010.07.14 18:04

    홋카이도에 교환학생으로가 있는 딸아이 만나러 곧가는데 꽃좋아하는 엄마위해 여행코스에 후라노필히라는데 기대가 되네요..

    • corvo 2010.07.15 12:47 신고

      반갑습니다. 7월~8월 중에 가시면 틀림 없이 제가 다녀왔을 때보다 훨씬 예쁠 거예요. 따님과 멋진 여행 다녀오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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