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나와 여자친구는 결혼 후에 무슨 차를 탈지 자주 고민한다. 자동차 매장에 들러 구경을 해본 적도 있고, 흥미로운 기사나 리뷰도 항상 공유한다. 그러다보니 예쁘고, 연비가 좋으며, 개성있는 해치백을 타는 것이 우리의 희망사항으로 자연스럽게 수렴되었다. 포드의 '포커스'도 유럽에서 인기가 아주 많은 해치백인데, 최근 나는 <포드는 사랑을 싣고>라는 이벤트에 당첨되어 3박 4일간 시승하는 행운을 얻었다. 시승이 경품이 아니라 자동차 자체가 경품이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사실 포커스를 운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5년 여름에 스코틀랜드를 여행했을 때도 구형 포커스를 렌트하여 원없이 타고 다녔다. 큰 차가 아닌데도 시속 100마일이 넘는 속도로 가뿐하게 달린 것이 당시 나에게 상당히 인상 깊었는데, 한국에서 신형 포커스로 다시 만나게 되니 왠지 감개무량했다.
□ 외관
시승할 차를 만나러 간 장소에는 여러 대의 포커스가 나란히 주차되어 있었는데, 나에게는 하늘색으로 배정되었다. 개인적으로 무척 좋아하는 색깔이다. 실제로 대학원 재학 시절 마티즈를 사려고 했을 때도 하늘색으로 골랐을 정도로... 마티즈와 마찬가지로 포커스도 하늘색이 외관과 참 잘 어울리는 것 같다.
둥글둥글한 생김새의 구형 포커스와는 달리, 신형은 외모가 좀 더 공격적이다. 요즈음 나오는 다른 차들과 마찬가지로 포커스도 찢어진 눈 스타일의 램프를 앞뒤에 달고 있다. 뒷면보다는 앞면이 좀 더 예쁜 듯... 앞면은 '마일드'하고, 뒷면은 '와일드'한데, 나는 마일드한 남자이므로... 헤헤
□ 내부
나는 요즈음 나오는 국산 준중형차(아반떼, i30, 포르테, 라세티, SM3)를 모두 운전해봤다. 크기 면에서 동급인 포커스는 이들에 비해 내부가 약간 좁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베이지톤의 밝은 인테리어와 깔끔한 내장재가 상쇄를 해서 그런지 답답할 정도는 아니었다. 반면 수납 공간은 많았는데, 특히 뒷문짝에 물병을 담는 공간이 두 군데에 있는 점이 특이했다. 또한 인스투르먼트 패널에 있는 각종 조작버튼은 어두울 때 푸른 빛을 내는데, 은은한 멋이 있어서 좋았다. 헬베티카 폰트로 표시되는 디스플레이에서는 왠지 미국스러움도 느껴졌고, UI가 직관적이어서 조작도 어렵지 않았다. 한 문장으로 인테리어를 표현하자면, 날씨 맑은 날에 씨애틀에서 포틀랜드로 드라이브 가는 기분을 주는 차랄까? (사실 나는 씨애틀에 가본 적이 없다.)
□ 주행 성능과 승차감
나에게 배정된 모델은 사양이 낮은 기본형 모델이었다. 고급형 모델에는 알아서 주차를 해주는 기능도 있지만, 기본형으로는 체험할 수 없었던 점이 무척 아쉬웠다. 내비게이션과 스마트 뭐시기 등의 화려한 옵션도 없었지만, 크루즈나 블루투스 통화 같은 편의 기능은 갖추고 있었다. 승차감은 국산 준중형차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묵직해서 안정적이었고, 고속에서도 핸들링이 불안하지 않았다. 그리고 엔진은 중형차 수준(배기량 2000cc, 162마력, 토크 20.2kg.m)이라 달리는 데 부족함이 없었고, 연비는 출력에 비하면 보통 수준이었다. 고속도로와 시내주행을 두루 한 후에 표시된 연비는 13km/l에 약간 못 미쳤다.
시승 기간 동안 비가 내려서 멀리 여행을 다녀오지는 못했지만, 데이트를 하고, 심야영화를 보러 가고, 나홀로 드라이브를 하고, 동생이 아르바이트하는 곳까지 바래다주며 나름대로 요긴하게 차를 썼다. 여러 사람이 동승하여 여러 상황에서 운전을 했기 때문에, 내 주관만으로 쓴 시승기는 아님을 밝힌다.
돌이켜보면, 스무살 때 2종 수동 면허를 따고 8년이 지나 1종으로 승격한 지금까지, 1종 차를 포함하여 제법 많은 차를 운전해 본 것 같다. 워낙 운전을 좋아해서 렌터카도 많이 타봤고, 단체로 여행을 갈 때도 항상 내가 운전을 맡는다. 내가 운전한 차는 참 많은데, 언제쯤이면 나만의 차가 생기려나? 오너드라이버가 되는 날을 꿈꾸는 나에게는, 개성있는 포커스를 타고 다니며 보낸 3박 4일이 꿈만 같았던 시간이었다. 포커스와는 유독 인연이 깊은 차니, 다음 번에는 왠지 내가 소유하게 될 것 같은 기분 좋은 예감도 든다.
가급적 내 블로그에는 주류에서 다소 벗어난 영화를 소개하려고 했지만, <건축학개론>은 예외적으로 남기기로 했다. 영화관에 가서 한번 더 보는 대신에 이렇게 리뷰를 쓰면서 여운을 즐기는 게 더 낫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물론 언젠가 DVD가 나오거나 파일공유 사이트에 올라오면, 소장하여 몇 차례 더 보게 되겠지만...
오랜만에 본 한국영화이고, 정말 오랜만에 여운에 취하게 만든 영화다. 조금 흥분한 어조로 표현하자면, <번지점프를 하다>, <클래식>과 함께 최고의 한국 멜로영화로 내 기억에 남을 것이다. <건축학개론>이 다른 두 영화에 비해 소재가 일상에 훨씬 가깝고, 그만큼 가볍게 볼 수 있는 반면, 감성적으로는 오히려 가장 깊숙이 자극을 준 것 같다. 멜로영화인데, 남자들이 더 열광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이 영화의 가치는 증명된 거 아닐까?
깜깜한 영화관 안에 있는 동안, 나는 관객이 아니라 대학교 신입생 승민(이제훈 분)이었다. 수수하면서도 적당히 새침하고 예쁜 여학생 서연(수지 분)에게 반하여 짝사랑하게 된다. 부끄러워서 그녀의 눈도 똑바로 못보는 주제에, 어쩌다 그녀가 살갑게 대하기라도 하면, 그날 밤 자기 동네에서 큰 소리로 그녀의 이름을 외치며 이웃에게 민폐를 끼친다. 하지만, 짝사랑은 보통 기쁨보다 고통을 주는 법. 나보다 더 잘난 남자가 그녀와 있을 때는 한없이 움츠러지고 괴로워질 수밖에 없다. 내가 그녀를 생각하며 잠드는 이불 속은 때로는 설렘 때문에 더 폭신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때로는 내 눈물 때문에 폭 젖기도 한다.
아마 나뿐만 아니라, '압서방'에 사는 잘생기고 훤칠한 남자를 제외한 대부분의 남자들이 한번쯤은 승민이었을 것이고, 그렇게 ‘사랑개론’ 수업을 받았을 것이다. 사랑에 빠진 한 남자의 마음과 1996년의 시공간적 배경을 무척이나 섬세하고 정확하게 그린 것이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이다. 특히 영화 속의 1996년은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과거이자, 당시 막 사춘기로 접어들었던 내가 실제로 동경한 미래 그 자체다. 사람들의 옛 추억을 실감나게 살려주니 아무래도 이 영화가 좋은 입소문을 타게 되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안타깝게도 나는 이제 대학교 신입생 승민보다는 서른 다섯살의 승민(엄태웅 분)에 더 가까워지고 있다. 하지만 이 영화 덕분에 소년 감성을 되찾았다. 모처럼 내 아이폰의(CD플레이어가 아니라 아쉽지만) 음악 재생목록에는 전람회, 015B, Toy, 윤종신의 옛날 음악들로 채워져 있다. 기억의 습작, 이방인, 세검정, Annie 등등... 그리고 좀 더 순수하고 따뜻한 마음으로 사람들을 대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도 든다. 이렇게 <건축학개론>은 메마른 감성을 촉촉히 적셔준 단비 같은 영화였다.
덧. 수지는 정말 훌륭한 캐스팅이다. ^^;






